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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구라] 시구쿄 썰 2개



{블로그 이전 중...)




멍하니 창문틀을 쓸었다.

어둠이 짙게 가라앉는 하늘을 캔버스에도 담아 봤지만 그래도 동하지 않는 마음. 이것을 어쩔지 고민해도 나오는 답은 없고 그저 막막한 것이 폐 속에 눌러 앉은 기분이었다.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찬바람이 머리를 식혔지만 동시에 마음도 식혀버렸다.

분노에 찼던, 냉정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마구잡이로 그어낸 그림은 미완성 재능이란 타이틀을 붙였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 색으로 물들어버린 양 손을 내밀어 하늘을 담았다. 어찌 이리도 멀단 말인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짜증만이 밀려왔다.

정리하고 방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이 곳이나 그 곳이나 별반 다를바 없었기에 그냥 바닥에 앉았다. 옆에 있던 냉장고에 손을 뻗어 우유를 꺼내 빨대를 꽂고 쭈욱하고 들이키니 뭔가 진정이 된 듯한 기분이다.

즐거운 마음이라도 느낀다면 무언가 바뀔까-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웃겼다. 너무 웃겨서 비웃음이 튀어나올 만큼.

무섭게 생긴 인상인 것도 안다. 내 행실이 그닥 좋지 못한 것도, 이리저리 치여 선택하지 못한 것이 잘못인 것도 아플만큼 잘 알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에 그닥 신경쓰지 않았었다. 도와주는 것은 좋아하고 다른 한 편을 들어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싫었던 나에게 주어진 길은 그 뿐이었다. 그래도 믿는 친구들이 있었고, 즐거웠었으니까.


그것도 과거뿐이지만.


어차피 인간은 그런 것이다. 늦게 깨달은 그것은 세상을 무채색으로 물들였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의심의 길이었다. 주변을 보고 타인의 시선에 치를 떨고 불신증만을 안고 왔다.


「너도 내가 역겹다고 생각하지.」


그 한마디에 잠시 움찔한 그가 생각났다. 아니라고 부정하려던 것이겠지만 불신증에 잠겨버렸던 나는 그것은 끊었다. 이 학교에 오면서 다 잊을 셈이었는데 마치 따라오듯 그는 같은 곳에 서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빛쪽에 나는 어둠쪽에-라는 것이겠지. 한숨이 들끓었다.

내가 감옥이나 다름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왜 이러고 있는지 다시 생각할 수록 스트레스만이 억압해온다.

대항전인지라 싸울지도 모르겠다고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그럼에도 그 짐작에서 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한심한 나 자신이 보이고 있었다.


"역시 포기해야지."


어설프게 결정한 것이 숨통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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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 내팽개친 캔버스는 바닥을 구른지 오래였다. 캔버스 너머는 버릇처럼 그어버린 선만 잔뜩이라 쿄마는 눈을 돌렸다. 그러나 눈을 돌린 곳은 이제는 잡동사니일 뿐인 상장들 뿐. 이런 잡동사니들 없어져버리면 좋을 것을. 혀를 차며 중얼거린다. 밖에서 잠깐 꺄악이라는 작은 소리가 났지만 미술부를 잠깐 훔쳐보려던 누군가임이 분명했다. 쿠즈류 료마를 찾아올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간혹 오는 사람들도 그가 기분이 나빠보이면 들어오지 않기 일쑤였기에 더더욱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시끌벅적한 바깥이 두꺼운 벽으로 갈라놓은 세계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그는 우울한 것을 덮고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집어들었다. 빨대를 꽂고 입을 대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진정하고 나서 보니 엉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마시려던 우유를 창틀에 올려놓고 화틀을 일으켜 세웠다. 구겨진 캔버스는 구석에 놓고 우유를 들었다.

똑똑-.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생각해봤지만 오늘 누가 오기로 한 예정이 없었다. 기분도 안 좋아서 그냥 없는 척이나 할까 해 새로운 캔버스를 꺼냈다. 하지만 다시 버릇처럼 무언가의 형태만을 그어놓고 반복이겠거니 싶어 눈을 감아버렸다. 옥상에서 땡땡이라도 칠까 고민하고 있는데 다시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쿠즈류군-. 없는 척해도 인기척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에 잠시 흠칫한 그는 일순 문을 잠가놓길 잘 했다고 생각한 자기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은 어떤 표정일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생각하며 그는 문 앞에 섰다. 문을 열 듯 잠시 손잡이에 손가락을 올려놓았으나 이내 내려버린다.


"...무슨 일인데, 히어로 타임."


놀리듯 불렀던 별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도망칠 길에 놓여진 것에 불과했다.


"에루나 격려 파티할 예정인데 어때? 시간 있어?"

"....."

"서예부라거나 연극부, 천문부 사람들도 오는데..."

"내가 있으면 분위기 깰 거 아냐. 됐어."


도망치는 이유라지만 실제로도 그랬다. 언제나 자신의 인상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벌벌 떨고 이상한 소문마저 생겨버린다. 한 것도 없는데. 억울하기 짝에 없는 일이지만 항의해도 믿어주지 않겠지. 아까보다 조금 더 우울해진 기분에 쿄마는 고개를 내저었다.